운동정보

SNPE 바른자세벨트와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운동할 수 있습니다.
자세분석 앱과 영상 정보를 활용해보세요.

SNPE 체험사례

[1] 자궁내막증 말기, 무분별한 대체의학, 고질적인 통증으로 힘들었던 몇 년간의 이야기

작성자
SNPE
작성일
2017-01-04 18:36
조회
3388

 

[1] 자궁내막증 말기, 무분별한 대체의학, 고질적인 통증으로 힘들었던 몇 년간의 이야기

 

나에게 자유를 안겨준 너, “SNPE” 

 

1. 현대의학에서 아버지를 잃다, 나의 무지로 스스로의 건강을 잃다. 

우리는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속에 살아간다. 특히 내 자신이 건강을 잃거나, 가족을 떠나보내는 아픈 경험이 있는 경우에는, 누구나 “건강”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그 홍수에서 의미있는 정보를  찾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나는 전자, 후자에 다 속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암투병을 하셨다. 아버지는 간암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까지 건너가셔서 세계적 명성이 있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셨고, 재발하자 의사인 사촌오빠의 소개로 국내 간암의 최고 권위자라는 분을 주치의로 병원의 메뉴얼대로 따르셨지만 결국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치료과정을 지켜보면서 병이라는 증상을 중심으로 환자를 카테고리로 구분해 획일적인 치료를 하다가 되지 않으면 포기해버리는 현대 의료 시스템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나, 나는 도서관에서 암관련 서적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병을 호전시키기 위해 “건강”의 답을 찾아서 정보의 홍수에 뛰어든 셈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러하듯, 아버지는 현대의학에서 내쳐지기 전까지 주치의에 절대적 신뢰를 두셨다. 의학적 지식이나 권위가 전무했던 나는 아버지의 “가망없음” 판정을 받은 후에나 내가 찾은 대체의학을 소개시켜드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말기암환자의 시간은 절대적으로 짧다. 한두가지 방법을 시도한다 한들 그 개인에게 잘 맞지 않을 경우 결국 암에 굴복하게 된다. 아버지 역시 그랬다. 그게 이미 10년 전의 일이다. 

나 역시 워커홀릭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치열하게 산 결과 젊은 나이에 건강을 잃었다.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시절부터 심하진 않았지만 생리통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단 음식을 좋아해서, 내 선택의 폭이 넓어진 대학에 가서는 매식에 과자나 유제품을 달고 살았다. 그래도 젊으니까 버틸만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 가서, 특히 논문을 쓰면서 건강에 타격을 입는다. 모델링을 돌리면서 48시간 동안 거의 잠을 안자고 컴퓨터 앞에 붙어있기도 하고, 늘 머릿속에는 온통 내가 맡은 프로젝트 구상으로 가득했다. 단기간에 내 구상대로 결과물이 나오면 그게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젊음을 걸고 치열하게 사는 내가 기특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생리때만 되면 이러다 죽겠구나 싶을정도로 아파서 저혈압성 쇼크가 오기 시작했고, 화장실이건, 연구실이건 가리지 않고 쓰러져 여러번 업혀서 학교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그래도 내 건강에 대해서는 안일했다. 졸업후에도 역시 내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목표가 있으면 밤을 새서라도 끝내야 하는 버릇은 여전했고,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기 위해 화장실 가는 시간도,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빵이나 요구르트 등으로 끼니를 떼우기 일수였다. 

그 과정에서 늘 책상과 한몸이 된 나는, 컴퓨터나 책에 파묻혀 스스로 척추의 구조적인 변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문제가 생리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얼굴은 윤기를 잃어 노랗게 변하고, 바짝 마르고, 활력이 없고, 근육통에, 어떤 날은 목이 돌아가지 않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건강에 신경을 썼다면 더 많은 증세를 기억해낼테지만 그조차도 기억을 못해낼만큼 젊은 날의 나는 그렇게 “무지”했다.     

2. 자궁내막증 말기 진단, 그리고 대체의학으로의 올인 

고민끝에 퇴사를 하고 자유인이 되었을 때, 내 몸은 이미 많이도 망가진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의원에서는 맥을 잡지 못할 정도로 맥이 약하고 피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퇴사한 그 해 어느날 오른쪽 난소부위에 통증이 시작되서 검사를 받았더니 자궁내막증이라고 한다. 그런데 말기란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막증에도 말기가 있구나!”  의사의 말인 즉은, 양쪽 난소 모두에 큰 혹이 생겨 있는데, 자궁, 난소를 포함한 근처 장기가 모두 엉겨붙어있어서 대수술이 될거라는 거다. 난소는 살리기 어려워서 다 절제해야 하는데 그러면 평생 호르몬을 투여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의사의 판단에 내 미래를 맡기고 싶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병원을 나서며 결심했다. “내 몸에 올인해보자. 아버지께 못 해드린 대체요법, 내가 해답을 찾아보자” 라고. 

일본에 오래 거주하신 믿을만한 지인이 “태양광선요법”을 권해주셔서, 그것을 먼저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너무 한정되어 있어서, 나름 선별한 “전문가”라고 하는 분에게 고가의 금액을 주고 카본광선조사기를 구입하고, 그분의 제안대로 식이요법을 하기 시작했다.  

결심 후 바로 거처를 산으로 옮겼다. 치유를 위해서는 맑은 물과 공기, 최소한의 스트레스가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한적한 산에 위치한 한 펜션에 장기투숙자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통증이 더 심각해졌다. 그 “전문가”가 권한 식이요법 중에 물의 섭취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철저하게 따른 결과, 몸의 수분 부족으로 인해 종양이 빠른시간에 오히려 더 커져버린 것이다. 절망스러웠다. 급하게 대처한 나머지 미미한 정보로 한 잘못된 선택, 가감없이 그 “전문가”를 믿은 내 잘못에 대한 대가였다. 

판단이 서자마자 아픈 몸을 이끌고, 남편과 함께 충청도까지 평소 가장 믿을만하고 생각되던 자연요법치료 전문가를 만나러 갔다. 거기서 머물면서 통증을 다스리고 다시 식이와 운동요법의 플랜을 완전 바꿔서 산으로 돌아왔다. 그분은 니시요법과 풍욕, 단식에 기반을 둔 자연요법을 추구하시는 분이었고 그 기준에 달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올인이 필요했다. 고기, 밀가루, 가공식품 등이 배제된 절제된 식습관에, 매일 30분이 소요되는 풍욕을 7~8차례 했으며, 기타 운동, 산행을 하다보면 해가 저물어 있었다. 단식이 염증제거에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듣고 여러차례 효소 단식을 했는데, 작정하고 30일까지도 했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을 산에서 내 몸을 위해 “올인”했으나, 결국 종양의 사이즈는 줄지 않았다. 몸은 전체적으로 건강해졌으나, 조금만 운동에 소홀하거나 소위 불량한 음식을 먹는 즉시, 어김없이 통증이 찾아왔다. 결국 겨울을 앞두고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몸안의 염증이 상당부분 사라져 난소를 살려두고 호르몬 주입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정상적인 몸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3. 서울을 떠나 고산지대로, 그리고 걸린 고산병과 면역력 저하 

몸이 회복되었다고 생각될 무렵, 우리 부부는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사람과 차에 치이는 대도시를 떠나 삶의 리듬이 느린 곳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새로운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간 곳이 해발 2천미터의 고산지대였다. 그 나라 사람들은 죽기전에 꼭 가보고 싶어한다는 유명한 여행지였는데, 친구가 그곳에서 한의원을 개업한 것도 큰 이유였다. 같이 있으면서 건강관리를 더 잘 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참으로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집 앞의 통유리를 통해 파란하늘과 호수를 볼 수 있고, 뒤에는 4천미터 산이 있었다. 겨울에도 꽃이 피는 곳이라 집앞은 겨울 벛꽃으로 만발했고, 공기는 말할 수 없이 청량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순박했으며, 언어를 배우는 것도,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문제가 터졌다. 이번에는 앓아눕기 시작한 것이다. 고산반응이라고 했다. 조금만 피곤하면 금새 지쳤는데, 그렇게 누워버리면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며칠을 앓았다. 눈에 열이 나듯이 뜨겁고 그 상열감이 머리에 퍼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다행히 의사 친구의 도움으로 반년쯤 고생하며 차차 나아졌다. 예전에 했던 자연요법은 전적인 시간을 요구했고, 삶의 제약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침뜸, 안마는 큰 제약이 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아, 한의를 배워야겠구나”. 

상당한 수업료를 지불하고 기본적인 침, 뜸, 지압에 관한 강의를 들었다. 이번에도 남편을 설득해서 같이했다. 나에게, 건강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비용은 충분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침과 뜸을 하기 시작했다. 지압은 근육을 풀어주는 갖가지 방법이었는데 눈썰미가 없는 나는 따라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타인에게 해줄 때 엄청난 에너지가 소요되어 나로서는 그저 이론에 불과했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침, 뜸, 지압 중에 지압이 가장 으뜸이라고 했다. 요점은, 지압시 아픈 곳은 문제가 생긴 곳으로 순환이 되지 않는데, 이곳을 풀어주면 소형인간의 원리(프렉탈 이론 관련)로 해당 장기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설명이었다. 하지만 아쉬웠다.  “스스로, 최소한의 통증으로, 간편하게 근육을 풀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몸이 좀 나아지고 그곳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남편도 나도 차차 건강에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기름기 많고 매운 그곳 음식을 종종 먹고, 바쁘다는 핑계로 침뜸과 운동을 거르며 지냈다. 언젠가부터, 몸이 피곤하면 왼쪽 눈이 뜨거워지면서 어김없이 두통이 찾아왔다. 어깨, 특히 왼쪽 어깨의 통증 때문에 어떤 날은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에게 안마를 받으러 다녀도 그때 뿐이었다. 깨끗한 공기에 작렬하는 태양으로 아무리 모자를 써도 얼굴에 잡티가 생기고, 특히 오른쪽 눈밑은 다크서클로 어둡고 뺨은 붉게 변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배운 바로는 간부위의 문제였다. 전체적인 체력이 떨어져 계단오르기가 힘이 든 것이 그저 일상이 되었다.  

4. 8체질을 알게되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찾던 답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8체질을 소개받았다. 사람은 모두 장기의 강약이 있어서, 강한 장기의 기운은 눌러주고 약한 장기는 북돋아주는 음식을 먹어야 장기의 균형이 잡혀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다시 한 번 서울의 8체질 한의원과 체질카페를 조사해서 집에서 가까운, 평이 좋은 한의원 한 군데를 골랐다. 한국에 나왔을 때, 찾아가 나는 금양, 남편은 토양으로 감별이 되어서 출국 전까지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큰 호전은 없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해보고 결과를 보고자 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올해 5월에 갑자기 귀국을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한편으로는 다시 한 번 내 건강에 매달렸다. 미국의 친구가 소개해준 건강식품, 실크파우더, 각종 엑기스 등 여러가지 것들을 동시에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 한의원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없었기 때문에, 카페에서 가장 평이 좋은 강남의 8체질 한의원으로 전환했는데, 남편의 감별이 토양에서 금양으로 바뀌었다. 아뿔싸! 이 이론에 의하면 이제까지 몸에 좋다고 먹었던 것들이 사실은 해로운 것이었다. 정보와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사실 8체질 자체의 역사가 깊지 않기 때문에 의사에 따라 판별 수준이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게다가 아직 판별이 되지 않은 음식들이 너무 많고, 그마져도 한의사들마다 의견이 분분하고 카페 회원들마다 좋고나쁨이 일관되지 않아 힘들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남편과 나의 건강이 정말 많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찾던 그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첫째, 한의사 원장님만이 아시는 그 오묘한 비법에 수동적으로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었다.“그분”에게만 온전히 의지한다는 얘기는 결국 환자에게 있어 이 방법이 일시적이고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의원에서 놔주는 2분 가량되는 그 “간단한” 침을 맞으러 나와 남편은 몇 개월을 평일날 거의 매일 2시간 가량을 길에서 허비해야 했다. 내가 배워서 하면 안돼나? 그것이 힘들다면 정말 원리라도 이해하고 침을 맞고 싶었다!  

둘째,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엄격히 제한되었다. 가공식품은 말할 것도 없고, 예전의 자연요법식이에 못지 않게 제약이 많았다. 고기, 밀가루, 유제품, 매운 것, 대부분의 뿌리음식은 일절 허용되지 않았으며, 푸른잎 채소와 해산물 중에도 체질에 맞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 끓여먹을 국재료가 없어서 늘 식탁은 맑은 조개탕, 문어탕 등에 전복, 백김치, 체질에 맞는 채소 몇 가지 정도에 불과했다. 우리에게 매식은 그림의 떡이었다. 마트를 가도 정말 살 게 없었다. 

그래서 8체질을 제대로 배워보고자 한 카페의 일일 교육을 들었다. 거기서는 기본 과정 뿐 아니라, 심화과정에 8체질침 과정까지 있어서 뭔가 체계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한의원에서 알게 된 것과 상충하는 지식이 상당히 많아서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당시 한의원에서 큰 효과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체질공부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과연 체질에 관한 제대로 된 정보는 무엇일까, 알면 알수록 복잡했다. 나는 더 이상 잘못된 정보와 선택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5. SNPE와의 만남, 드디어 진짜를 찾았다! 

그러던 와중의 어느 날, 다이어리를 보니 9월 5일 월요일이었다. 왜였을까? 그날 아침 처음으로 SNPE를 검색해 사이트를 찾아내었다. 사실 그 전에 책은 집에 있었다. 아마 몇 주 전에 읽어보고자 산 것으로 기억한다. 

어깨 통증으로 주기적으로 다니던 마사지샵에 특이해 보이는 운동을 크게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놓은 것을 보고, 거기 놓여있는 최교수님 책을 대강 훑어본 게 기억이 난다. 특이하네~ 하면서도 내가 알아본 여러가지 정보 중의 하나겠지 하면서 넘어갔었다. 그러다가 책을 사고, 이제 읽어봐야지 주의를 기울이면서, 뭔가 정보가 있을꺼야 하는 마음으로 서핑을 한 것 같다. 그리고 9월 5일, 사이트를 열어 “동국대평생대학원 최고위과정 신청” 배너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교육을 하는구나! 어쩌면 내가 찾던 그 답을 알려줄 수도 있어.”. 일단 교육 커리큐럼을 인지하고는 몇주간 사놓고 읽지않던 그 책을 단숨에 읽어내렸다. 읽는 내내 마음이 두근거렸다. 뭔가 내가 찾던 답일 것 같은 느낌에… 바로 그 날, 근처의 교육센터를 찾아내어 신청을 하고, 그 다음날 문화센터에서 처음으로 SNPE 운동을 접했다.  그리고 가족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내가 찾아 헤매던 숱한 그 정보의 하나라고 생각했던 남편은 “또 시작이냐”라는 뉘앙스로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래서 본원에 전화를 했다. 오리엔테이션때 남편이 같이 가도 되겠냐고. 

우여곡절 끝에 인터넷으로 마지막 수강인원으로 신청을 하고, 결국 5일 후인 토요일날 동국대의 첫강의를 들었다. 김주연, 박효민, 조세한별 강사의 체험후기를 들을수록 “내가 오길 잘했어”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최교수님의 첫강의를 들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SNPE의 핵심 두 가지, 척추의 구조를 바꾸고 &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것. 그 두 가지를 스스로 하는 것!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첫번째, 그동안 척추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모른다. 

자궁내막증 말기인 나의 치료를 도와주신 자연요법 전문가는 건강을 위해 두 가지 핵심을 역설했었다. 1) 장이 건강해야 한다(면역세포의 70~80%가 장에 분포). 2) 척추의 구조가 정상적이어야 한다… 그 분도 척추 건강을 위해 여러가지 목침을 개발하셨지만 결국 어떻게 구조를 정상적으로 돌리느냐보다는 장건강에 초점을 맞춰서 치료했던 것이다. 왜냐? 방법을 모르시므로. 그때의 설명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면서 왜 나의 회복이 제한적이었는지 마치 퍼즐조각이 맞춰지듯 깨달음이 왔다.  

두번째,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것. 한의사에게 배웠던 지압의 효과와 매치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아쉬워하고 갈구하던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놓는 것이었다. “스스로 해라! 도구로!” 

한 시간 남짓한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오랜기간 그토록 갈구하던 질문의 해답이 다 나왔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핵심으로.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오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이번 한 번의 수업으로 나는 수업료가 하나도 안 아깝다”고. 남편도 내게 말했다. “이제까지 당신 따라 이것저것 알아본 것 중에 가장 믿음이 가. 나도 수업 들을 수 있을까?”  

-2편에서 계속-

 

 

 

 
전체 46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10
통증, 턱관절, 생리통, 우울증 등 힘든 나날들을 이겨낸 힘
SNPE | 2017.04.17 | 추천 0 | 조회 3915
SNPE 2017.04.17 0 3915
109
20대 여성의 부종, 어깨통증, 팔저림, 요통, 만성피로 등 만병의 원인을 해결한 사례
SNPE | 2017.03.30 | 추천 0 | 조회 3877
SNPE 2017.03.30 0 3877
108
추간판 탈출증 진단, 척추 유합술 권유 받았던 여성, SNPE를 만나다!
SNPE | 2017.03.13 | 추천 0 | 조회 2486
SNPE 2017.03.13 0 2486
107
운동이 곧 치료가 되는 운동 SNPE
SNPE | 2017.03.07 | 추천 0 | 조회 2542
SNPE 2017.03.07 0 2542
106
고질적인 좌골신경통, 이상근 증후군을 극복하게 한 SNPE
SNPE | 2017.02.07 | 추천 0 | 조회 7666
SNPE 2017.02.07 0 7666
105
바이올린 연주 그리고 어깨통증, 허리통증, 두통 등 나를 괴롭히던 통증에서 벗어나다! SNPE 바른자세 운동
SNPE | 2017.01.10 | 추천 0 | 조회 5121
SNPE 2017.01.10 0 5121
104
[2] 모든 것을 다 경험한 후 깨달은 간단한 진리 SNPE
SNPE | 2017.01.04 | 추천 0 | 조회 2786
SNPE 2017.01.04 0 2786
103
[1] 자궁내막증 말기, 무분별한 대체의학, 고질적인 통증으로 힘들었던 몇 년간의 이야기
SNPE | 2017.01.04 | 추천 0 | 조회 3388
SNPE 2017.01.04 0 3388
102
근막통증증후군, 무기력증, 귀막힘 현상(5년)을 해결할 수 있게 해준 SNPE
SNPE | 2016.12.13 | 추천 0 | 조회 4545
SNPE 2016.12.13 0 4545
101
[만물상 출연자] 경추, 요추 퇴행성 디스크 탈출증으로 인한 통증의 해결은 물론 건강한 아름다움을 얻게 해준 SNPE
SNPE | 2016.11.24 | 추천 0 | 조회 4002
SNPE 2016.11.24 0 4002
Scroll to Top